ART TOUR · GALLERY
BREATH IN A CIRCLE
KIM SEONG CHEOL
김성철
Gana Art
‘호롱’은 기름을 채워 불을 밝히는 등잔(Oil lamp)으로,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아득한 과거부터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조선 후기 도자기로 만든 작은 종지형 등잔이 사대부 계층에서 유행했으며, 이는 19세기 말 석유가 국내에 수입되면서 심지뽑이 뚜껑이 있는 등잔의 형태로 변모했다. 이처럼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은 호롱은 오늘날 그 기능을 잃고 장식적인 오브제로 전락했다. 하지만 호롱은 본래의 실용적 목적이 사라진 과거의 산물이면서도, 오랫동안 빛의 환영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 사물이다.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7(d) x 9.5(h) cm, 2.8(d) x 3.7(h) in,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내게 있어서 호롱은 ‘갈망의 사물’이다. 그것은 꿈을 꾸는, 인간적인 사물이다.‘
– 김성철 –
작가가 호롱에 주력하게 된 시발점은 유년기에 집에서 발견한 오래된 사기 등잔이었다. 투박하지만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표면의 질감과 호롱의 오묘한 내부 구조는 작가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김성철은 이러한 사물에는 만든 이의 심상과 더불어 그것을 사용한 이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숨결이 잔재한다는 사고방식을 작품을 통해 내비친다.
‘원 위에 숨’이라는 전시명이 은유하듯, 김성철의 영감의 원천이 된 둥근 호롱은 사람들의 들숨과 날숨에 따라 흔들리는 다채로운 빛의 환영을 선사한다. 이에 가나아트는 관객이 좁은 창과 문을 통해 작품을 관찰하도록 유도하는 전시 구성을 통해 호롱의 불빛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이로써 관객은 마치 오래된 집이나 성전에 발을 디딘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또한 삼각형 또는 육각형으로 놓여진 구조물은 주변의 빛을 차단하여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작가가 구축한 정서적인 세계와 관객이 서있는 실제 공간을 구분 짓는 동시에 연결시키는 매개물로서 자리한다.
이처럼 김성철의 작업 세계에서 호롱은 오래된 기억과 삶의 표상으로, 작가는 호롱의 기능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대신 오랫동안 우리의 삶의 공간을 밝혀온 사물에 담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에게 처음으로 영감을 주었던 오래된 호롱을 원형으로 하여 제작된 본 전시의 출품작은 신형 등잔, 즉 액체 연료를 담는 몸체와 심지뽑이 뚜껑으로 구성된 호롱의 형태를 단순화하여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이 주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모든 단계가 수공으로 이뤄지는 김성철의 작업 과정은 달항아리의 성형 방식처럼 상하부를 동일한 형태와 크기로 물레 성형한 뒤 이를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또한 김성철의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작고 가느다란 심지뽑이는 정교한 물레성형 기법의 극치를 보여준다.
김성철, 피스1: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red slip, 17(d) x 10.5(h)cm, 6.7(d) x 4.1(h) in. 피스2: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celadon glaze, 4.5(d) x 4.5(h)cm, 1.8(d) x 1.8(h) in. 피스3: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4(d) x 5(h)cm, 1.6(d) x 2(h) in 피스4: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celadon glaze, 4(d) x 5.5(h)cm, 1.6(d) x 2.2(h) in 피스5: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red slip, 8(d) x 7.5(h)cm, 3.1 x 3(h) in.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조각의 전통적인 자연 소재인 흙을 바탕으로 작가는 유약이 번지거나 흘러내리며 만들어내는 효과와 독특한 질감 표현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본 전시의 출품작들은 기존 작업의 정형화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몸체에 뚜껑, 손잡이, 굽 등을 ‘덧붙이기(조립)’하며 다양한 형태변형을 꾀한 결과물이다. 마치 버섯이나 균류가 성장하는 풍경을 연상시키는 해당 작품들은 작가의 유희적 감각과 판타지적 상상력이 가미된 모티브로서, 유기적인 형태가 자유롭게 결합하여 전형적인 호롱의 형상에서 거듭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전시의 다양한 도자기를 통해 투명유, 결정유, 청자유, 망간유 등 유약의 사용과 형태에서 변화를 시도하며, 작업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가 실용적 기능을 넘어서 하나의 조형물로서의 미학적 가치를 지닌 김성철의 작품을 재발견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crystallization glaze, 25(d) x 2.5(h) cm, 10(d) x 1(h) in.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위의 작품은 복잡하기보다는 단순하고, 낮으며, 부드러운 곡선이 주를 이룬다. 김성철은 19세기 말 유행한 신형 등잔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의 대부분의 작품 또한 기름 연료를 담는 몸체와 섬세한 물레성형을 통해 제작한 심지뽑이 뚜껑으로 구성된다. 단순한 원판이 반복되는 기존 작업의 정형화된 방식에 기반을 두면서도, 작가는 결정유의 농도와 ‘면 깍기(또는 면치기)’를 통해 표면 질감에 변화를 주고 있다. 순백의 도자기와 ‘면 깎기’의 조합은 18세기경부터 조선 백자 기물 중 술병이나 제기류 제작에 사용되었던 기법이다. 이는 통치이념으로 성리학을 수용하며 호쾌함보다는 반듯함을,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추구했던 사대부들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작가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려 하기보다는 각의 개수와 면 폭의 차이, 원판의 넓이 등 호롱에 불을 켰을 때 변화하는 시각적인 효과를 실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가는 그의 심상이 내포하는 고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최적의 빛의 굴절율을 찾아내고자 한 것이다.
김성철, Untitled, 2022, white porcelain clay, 5.5(d) x 7(h) cm, 2.2 (d) x 2.8(h) in,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Untitled>(2022)는 김성철의 이번 출품작 중 몸체에 뚜껑, 손잡이, 굽 등을 ‘덧붙이기(조립)’하며 다양한 형태변형을 꾀한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해당 작품은 마치 버섯이나 균류가 성장하는 풍경을 연상시키지만, 이러한 형태는 특정 자연물의 재현보단 김성철의 판타지적 상상력이 가미된 모티브에 가깝다. 어린 시절부터 물건의 외양을 살피고, 스스로 조립하는 것에서 흥미를 느낀 김성철은 그의 유희적 감각을 가득 담은 작품을 제작했다. 백자토로 만든 하얗고 매끄러운 몸체에 여러 유기적인 형태가 자유롭게 결합한 해당 작품은 불빛과 그림자의 독특한 떨림을 연출하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 Gana Art 제공